Tuesday 17 December 2013

필리핀 재난일기: 타클로반 거리의 어둠과 파괴

태풍 하이옌이 지나간 후 한 달, 한 구호요원이 절망 한 가운데로의 어려웠던 여로를 돌아본다

리오지나 모랄레스
2013년 12월 8일 일요일 07.00 GMT
theguardian.com
타클로반시 거리에 놓여진 사체들. 
사진: Pio Arce/Genesis Photos/World Vision

마침내 집이다. 나는 월드비전 최초대응팀의 일원으로 지난달 열흘을 오르모크 시와 타클로반 시에서 보냈다. 지난 9년 동안 이 기관 소속으로 많은 재난시 최초대응팀으로 일해왔지만, 필리핀 국민인 나의 경우에 있어서마저 태풍 하이옌은 내가 본 최악의 경우였다. 나는 그 곳에 무엇이 필요한 지에 대한 초기평가와 그에 대한 기관의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그 곳에 있었으며, 지금은 내가 주로 활동하는 마닐라에 돌아와 - 사실 나는 루손 섬 비콜지역에 있는 카마린 수르 주에서 자랐다 - 다시 타클로반에 배치될 때까지 대기하는 중이다.

세부에서 오르모크까지는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항구는 먹을 것을 가져다 줄 사랑하는 이들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보통 두 시간이면 될 오르모크에서 타클로반까지의 이동에는 지프니(필리핀의 화려한 버스)에서 6시간, 그리고 밤새 기다린 후 오토바이 택시인 하발하발에서 4시간을 합하여 총 이틀이 걸렸다.

새벽 6시, 타클로반에서 보내는 첫 날,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빵집 앞에 줄을 섰다. 그들 중 일부는 새벽 4시부터 기다린 이들이었다. 빵집 주인은 한 사람당 50 필리핀 페소(60p)어치의 빵만 팔았다.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다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주유소 두 군데에서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수백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우리가 도시를 떠날 때 사무실과의 통신이 두절되었다. 타클로반에서 보내는 동안 나는 끝없는 파괴의 풍경을 목격했다. 집, 학교, 정부청사, 병원, 시장들이 모두 무너져 있었다. 사탕수수, 바나나, 코코넛, 대나무 및 다른 많은 나무들이 뿌리채 뽑혀있었다. 언제 어떻게 그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들이 마지막으로 끼니를 해결한 건 언제일까? 지금 그들은 어디서 자고 있을까?

지프니로 6시간을 이동한 다음 알랑갈랑에서 멈추었다. 쌀 창고는 약탈당했다. 그들이 원한 것은 굶주린 가족을 먹이는 것 뿐이었다. 두 명의 동료들과 나는 타클로반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하발하발을 찾을 수가 없었기에 대신 동료들의 가족이 살고있는 근처에 있는 마을 카리가라로 가 보기로 했다.  우리는 거기서 우리를 오르모크 시로 데려다 줄 지프니 운전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운전기사의 가족들이 지프니에 잠들어 있었다. 왜냐하면 태풍에 그들의 집이 파손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기사와 그의 가족들은 우리를 반겨주었고 음식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것이 우리가 밥을 먹은, 그리고 세 끼를 다 먹을 수 있었던 마지막 날이었다.

타클로반은 혼란 가운데 있었다. 시청으로 가는 길 양 쪽으로 죽은 동물들과 어린아이들의 사체가 산재되어 있었다.그 중 일부만이 가려져 있었다. 타클로반의 컨벤션 센터는 태풍 이틀 전 피난센터가 되었다. 새벽녘에는 상점을 약탈한 남자들에게 받은 즉석국수를 만들고 있는 어떤 어머니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다른 또 한 명은 시장을 약탈한 사람들이 주고 간 말린 생선으로 저녁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약탈자들"이 그들이 구한 것들을 나누어 주었으며, 그래서 모든 이들이 먹을 것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남자들은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 했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이 조금 생기면 아이들에게 주었다.

식량지원이 언제 도착하는지 그들이 내게 물었을 때, 나는 일부 도로 사정이 너무 좋지 않아서 지원을 받기가 극도로 어렵다고 설명해 주어야만 했다.

밤이 되자 음식을 하는 불과 온기를 위하여 태우는 오래된 타이어 타는 불빛을 제외하고는 타클로반은 완전히 어둠에 갇혀있었다. 군인들과 경찰관들이 전략 도로와 지역들을 순찰하고 있었으며, 저녁 8시부터 새벽 5시까지는 통금시간이 부과되었다. 모든 마을이 그들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나가는 출구에 보초를 서기 위해 남자들이 조별로 조직되었다.

우리 기관의 프로그램 사무관 밀드레드가 우리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우리는 저녁으로 죽을 먹었고, 아침에는 빵과 커피를 마셨다. 그 다음날 오후 3시 시청에 도착했을 때에는 남은 빵과 올 때 가지고 왔던 통조림 음식을 먹었다. 나는 그날 밤 피난센터와 임시주택의 찬 바닥에서 굶주린 채로 잠들었을 모든 아이들을 생각하며 비가 내리지 않길 기도했다.

타클로반에서의 평가작업은 어려웠다. 오토바이를 구할 수는 있었지만 연료를 찾을 수가 없다. 우리 팀의 많은 이들이 여러 다른 곳으로 회의를 가기 위해 수 마일씩 걸었다. 우리는 튀긴 생선과 밥을 얻어오거나 우리에게 나눠주기 위해 집에서 카사바와 채소를 가지고 올  수완이 좋은 동료들에게 의지했다.

열흘이 지나 군 비행기가 우리를 데리러 와 떠나게 되면서 나는 그 날 먹기 위해 팀에서 가지고 있던 비스킷 20개를 나누었다. 마닐라와 우리 가족들에게 돌아가기 전 다시 한 번 세부에서 식사를 하고 호텔 침대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러나 타클로반의 아이들과 가족들은 여전히 거기에 있고, 그들에겐 그 곳을 벗어날 곳이 없다.

*리오지나 모랄레스는 월드비전 필리핀의 커뮤니케이션 사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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